한때 겪었던 길위의 각성을 내내 기억하는지라, 아니면 중간까지 진행되다가 결국은 엎어지고야만 여행서적출판에 대한 여전한 갈증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종종 서점에 가면 자연스레, 여행서적코너에 다가가 막연한 서베이정도로 살펴보곤한다.
그러다가 얼마전 지하철 출퇴근용으로 그중 몇개를 집어올려 구입하게 되었다. 적당히 최근들어 유행하는 스타일의 사진과 (자칫 싸구려로 읽힐) 감성적인 감상이 뒤섞인 그럭저럭한 책들을 보다보면, 늘상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환상도 이런 환상이 없고, 약장사도 이런 약장사가 없으며,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고, 자뻑도 이런 자뻑이 없지싶다.
머 나역시 여행의 소중함과 내가 겪은 감흥을 설익은 솜씨로 풀어놓곤하였고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주절대고 있으니 타인의 기호를 논평할 수준도 되지 않음은 전제로 하겠다.
그럼에도,
천편일률적인 기행서적류에서, 자칫 싸구려 감상이 되지 말아야할 기본 전제조건들은 나름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마찬가지로 그게 아직 길을 떠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뚜렷한 현실감각이다. 현실과 박리되어 내내 이루어지는 여행에서의 감흥을 초점나간 사진하나와 도대체 무엇을 흉내내려하는지 모를 더듬어대는 초현실적인 단어 몇개로 나열한 어설픈 시와 결부시킨 페이지를 보고 있자면, 물어보고 싶다. 이게 정말 그 사진을 찍는 순간의 진정한 느낌이고, 그때 떠오른 생각이었는지 말이다. 리얼리티가 결여된채, 몽롱한 저너머 세계를 열심히 보여주고자 훗날의 포토샵과 다다이즘으로 뒤범벅된 페이지 하나는 허구요 환상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그 뒤를 따라 시궁창(?)같은 현실을 벗어나 낙원(?)같은 여행지로 떠나는 이들의 한손에는 내내 주체도 못할 dslr이 힘겹게 따라다니고, 어딘지 모르게 있을거 같은 현지인들과의 깨달음에 이르는 교감을 왠지 만들어내야할것같은 느낌에, 지금 이 순간 살고 있는 한국에서는 옆집에 사는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버거운 일상으로 시름하는 가난한 현지들의 주름에 싸구려 감상을 덧입히고자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러.니 시장에는 썩은 토마토만 가득하고, 우유 한통을 사기위해 2-3시간씩 기다려야하는 쿠바인들의 삶은 음악의 풍요로움과 하바나의 바래진 풍경에 대한 찬사로 두껍게 가려지고, 무지하다시피한 일반적인 교육수준과 뒤섞인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헐벗은 생활을 하는 티벳인들은 신들의 나라로 칭송받으며, 에이즈와 각종 질병및 뼈속까지 찌든 가난으로 허우적대는 인도인들은 10억명의 구루(깨달은 스승)로 포장되기 마련이다.
사회가 열악하여 삶이 피곤한 이들을 잠시 엿본 부유한 자들이 그네들의 진정한 문제를 보지 않으려 하고, 지극히 보는 이들의 잣대로 보고싶어하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리얼리티가 제거된 채 자신의 환상을 사진과 글로 펼쳐내는 것은 솔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실로 재앙에 가깝다. 그렇기에, 한낱 방문객에 불과한 본인 자신의 감흥을 전통내지는 지켜야할 무언인가로 스스로 단정짓고 그들에게 강요하며, 몇년후의 재방문에 변했다며 배신감에 치를 떠는 행태는 지극히 유아적이기만 하다. 그럼 인도인들은 앞으로도 수천수백년 맨발에 인력거나 끌고, 티벳인들은 장사는 하지않고 오체투지만 하고, 쿠바애들은 신발에 구멍난채 시가만 피어대길 바라는 것인가? 우리 자신도 늘상 추구하는 물질적인 욕구와 필연적인 가난 극복에 대한 보편적인 열망을 거세시킨채, 관광지 엽서틱한 순간 하나를 환상적으로 포장해내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더불어, 팔아 들인 수익의 단 1원도 진정한 책의 주인공들인 현지인들의 실제 상처를 덮어주는데 쓰이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은 아이러니하기만하다.
요컨대 삶은 어디나 구차하고 남루하다.
나름대로 오대양육대주를 장기간 여행해보면서 느꼈던 점은
세상 어디를 간다한들 역설적으로 사람 사는 모습이란 것은 그다지 다를게 없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현실과 극적으로 비견될 천국도 없고, 낙원도 없으며, 기막힌 곳도 없고, 영적으로 충만한 곳도 없다. 사회적인 상황으로만 본다면 오히려 열악하거나 더더욱 어려운 곳들이 그렇지 않은 곳들에 비하면 전세계적으로 많으면 많달까, 그런 곳들에서도 저마다의 행복과 문제점은 늘상 그렇듯이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다.
그렇기에,
진정한 여행내지는 기행서적이란
지구촌 동시대인들의 아픔과, 기쁨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보고 나누는 것이며,
그것이 현실이라는 틀에서 리얼리티를 획득했을때,
여행이 끝나고 귀국한 후에도, 그들에게는 지속적인 이해와 관심을,
본인 자신에게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언제나 도망칠 수 있는 해방구마냥 여행이 인식되고,
그런 인식을 부채질하는 서적들이 많아지는한,
여행에서의 충만했던 에너지와 감흥을, 여행이 끝난후에의 현실 삶에서의 원동력으로 쓰기보단,
비루한 한국 현실에 대한 부정과 다시금 도피적인 여행에 대한 또다른 갈망으로
소모적인 반복을 계속하게 만들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어찌보면 삶이야 말로 진정한 여행일터.
우리가 실로 감동하고 충만해야할 곳은
여행서적의 환상적으로 덧씌워진 저곳 어드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이곳이 아닐까한다.
그러므로 나는 최근들어 종종 매체에서 보곤하는 '여행생활자'라는 듣보잡스런 용어와 그것을 내건채 유유자적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행태가 심히 거슬린다. 장기간의 여행이 생활이 된 상황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자 나온 단어인듯한데, 무엇이든 생활이 되고 삶이 되면 그 자체가 결코 낭만적으로만 흐를 수 없거늘, 굳이 여행의 단어가 주는 설레임에 생활을 갖다붙여 또다른 판타지를 안겨다주고자 하는 노력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길고긴 여행의 끝에서 결국에는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채 타국을 떠도는 수많은 이들의 유아병적인 모습을 여행중 마주칠때마다, 적당한 긴장의 소중함과 바닥에 붙지 못하고 허공에 떠 있는, 허세좋은 삶의 허구성을 동시에 느끼곤한다.
역설적으로 여행이 삶에 붙어 있을때, 현실을 담아내는 원동력이 될때,
진정한 값어치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투로 무쟈게 솔직하고 투박하게 담아내려고 했다가,
결국 출판사로부터 퇴짜맞은 것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보고 싶은 것을 찾고, 환상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맞춤형 서비스 정신으로 입각하여,
색조입힌 구라를 풀어내는 것이 기행서적의 기본 자세일런지도 모르겠다.